정보화마을 충남 금산 인삼/약초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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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금산 인삼/약초마을 전경사진입니다.
금산 전경

1896년 8월 4일 칙령 제36호 (則令 第36號)에 13도 실시에 따라
충청남도 공주부(忠淸湳道 公州府)의 금산군과 진산군을 전라북도로 편입되었다가
서두에 기술한 바와 같이 1914년 3월 1일 부, 폐합으로 진산군을 병합하여
현재의 금산군(錦山郡)이라 칭하고,
금산면(錦山面), 금성면(錦城面), 제원면(濟源面), 부리면(富利面), 군북면(郡北面), 남일면(南一面), 남이면(南二面), 진산면(珍山面), 복수면(福壽面), 추부면(秋富面)의 10개면(面)으로 하였다가 1940년 11월 1일 부령 제221호(府令 第221號)에 금산면(錦山面)이 금산읍(錦山邑)으로 승격되어 1읍 9면으로 되었다. 그후 1963년 1월1일 서울특별시, 도, 군, 구의 관할구역 변경에 관한 법률(법률 제 1172호)에 의한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전라북도에서 충청남도로 편입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광복 이후 행정구역의 변동상황을 살펴보면은 1953년 12월에 군북면 의회(郡北面 議會)의 의결에 의하여 내부리(內釜里)에 있는 군북면사무소(郡北面事務所)를 현재의 위치인 두두리(杜斗里)로 신축이전 하였으며, 1962년 5월 27년 군조례(郡條例) 제28호에 따라 군북면 내부출장소(郡北面內釜出張所)를 설치하였다.
1973년 7월 1일 대통령령(大統領令) 제6542호에 따라 복수면 용지리(福壽面 龍池里)가 추부면(秋富面)에 편입되었다. 그동안 인구의 증가와 말단 행정수요의 증가로 행정리의 수는 꾸준히 증가하여 1960년에 156리 946반이었던 것이 1964년 163리, 1965년 166리 1967년 167리, 1968년 1005반으로 증가되고 1970년 169리 1015반, 1971년 174리 1016반, 1974년 203리 1078반, 1975년 212리 1092반, 1980년 231리 1093반, 1981년 1070반으로 축소되었다가 그 6년 후인 1987년에는 247리, 1988년에는 247리 1089반, 1996년에는 249리 1112반으로 조정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 발췌 - 금산군청 ( 기획조정실 ) 저희 금산은 애국선열들의 유지가 깊숙히 서려있는 유서 깊은 고을이기도 하다.
조국과 민족이 위기에 처했을 때 목숨 바쳐 싸운 무수한 선열들이 우리 금산 땅에 잠들어 있고 위국단충(爲國丹忠)의 의혈장사들이 남긴 핏자국과 칼 자취가 우리 금산 땅 도처에 새겨져 있습니다.
인삼을 빼놓고는 얘기가 되지 않는 우리고장 금산은 국내에서는 물론 국제적으로 인삼의 집산지로 알려져 연중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국가경제에도 이바지하고 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